안녕하세요. 독자님 :) 며칠 전 과일을 사러 단골 과일 가게에 갔더니, 사장님이 5월에는 참외와 수박이 제철이라고 추천하더라고요. 참외는 그렇다 치고, 수박이라고요? 수박은 여름 과일 아닌가요? 물었더니, 여름에 나오는 노지 수박은 복불복인데 이즈음 나오는 하우스 수박은 무조건 맛있어서 그렇대요. 재배 기술이 발달하면서 딸기는 겨울, 수박은 늦봄이 제철 과일이 된 것이죠. 그래서 저는 뭘 샀을까요? 참외랑 짭짤이 토마토를 샀어요. 한창 싱그러운 제철 과일에 밀려 구석에 있는 짭짤이 토마토는 지금 아니면 먹기 힘들 테니까요. ‘지금’ 아니면 하기 힘든 일, 독자님에게는 무엇인가요? 세계를 누비는 박정은 수녀는 ‘지금’ 독일에서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저는 짭짤이 토마토를 한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이 글을 쓰고요. '지금' 비리디타스를 경험하시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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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랴부랴 짐을 꾸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날아왔다. 드레스덴의 매우 오래된 수도원에서 열리는 머튼 학회에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주변에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이 많았다. 아침 일찍 들른 카페에서 만난 타나라는 젊은 여성은 우크라이나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독일어를 배우느라고 참 힘들었단 이야기를 하며, 김치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중앙역 맥도날드에서 일하니 꼭 들르라고, 치즈버거를 먹여주겠다고 했다. 타나가 떠나고 혼자 학회에서 나눌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이 독일의 얼굴이 새삼 낯설다. 교통질서를 너무 잘 지키며 거리에는 부스러기 하나 떨어져 있지 않다는 독일인의 이미지는 없다. 도덕적 의무에 충실했던 독일은 이제 매우 글로벌하고, 거리거리에는 마라탕 가게가 있으며, 무슬림 식당들이 즐비하다.
성령 대축일을 기다리며,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새로움으로 충만하다. 토마스 머튼은 이 순간을 ‘르 푸앵 비에르주 (le point vierge, 순결한 점)’ 라고 불렀다. 세상의 기준으로 결정짓거나 이름 짓지 않는 순간, 이른 아침 새들이 아직 노래를 시작하기 전의 시간, 그래서 하느님의 기준이 내 안에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순간이다. 지금 내가 걷는 프랑크푸르트의 거리에서 어쩌면 나는 이 ‘르 푸앵 비에르주’로 초대받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하느님께 향하는 효성의 은사를 받고 싶다는,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내 영혼의 갈망을 감지한다.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간 곳은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 수도원이었다.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가니, 라인강이 나온다. 앞에 앉은 여섯 살 소말리아 출신 소녀는 유튜브로 영어를 배웠고, 독일어를 모른다고 했다. 해맑게 웃으며 내게 껌을 주고, 자기의 감자튀김도 같이 먹자고 했다. 사람 사이의 친밀감이, 어린 소녀에게서 오는 순수한 호의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뤼데스하임 역에서 언덕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데, 온통 초록색이다. 그리고 힐데가르트 성녀가 작곡한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포도밭을 끼고 걸어가는 동안, 들리는 소리는 새들의 노랫소리뿐이었고, 수도원 꼭대기 성당에는 입술 위에 검지를 대고 침묵하라는 사인을 하고 있는 조각상이 보인다. 수도원 아래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포도밭이고, 수도원 반대편으로 가면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성령으로 충만했던 중세 신비가가 살던 이곳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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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가르트 성녀 수도원을 향해 걸어가는 길은 온통 초록색 싱그러운 바람이고, 흔들리는 풀잎이며 익어가는 포도들이다. 이곳에서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의 은혜는 생명의 순례임을 생각한다.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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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를 살았던 성녀, 힐데가르트는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설교했고, 글을 썼으며, 노래를 작곡했다. 또 약방문을 썼다. 내가 이해하는 그는 생명을 이야기하는 예언가다. 그의 사상인 ‘비리디타스(viriditas)’는 초록 생명의 힘, 복원하는 힘을 의미한다. 특히 이곳 수도원의 푸르른 빛 속을 거닐고 있으니, 자연과의 화해가 결국 우리를 살린다는 걸 더 깊이 느끼게 된다.
그렇게 보니, 독일이 식민지 지배를 사과하고, 아프리카와 중동의 난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이, 비리디타스가 아닐지 생각한다. 물론 난민들의 가난과 생존을 위한 투쟁이 독일에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하지만, 독일의 도덕적 선택 앞에 겸허해진다. 그리고 여성 영성을 살고 싶은 나는 이런 선택과 방법이 생명을 담는 모성성과 닮아 있음을 생각한다.
그렇게 성령을 기다리는 둘째 날, 나는 하이델베르크에 갔다. 중세의 성이 남아 있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나는 두 개의 교회가 우뚝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는 루터의 개혁 정신을 기리는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Heiliggeistkirche)였고, 다른 하나는 반동 개혁의 선두에 섰던 예수회 성당(Jesuitenkirche)이었다. 성령교회는 원래 가톨릭 성당이었지만, 종교개혁으로 개신교 교회가 되었고, 한때는 교회와 성당으로 함께 쓰이기도 한 특이한 역사를 보여준다.
교회 입구에는 성모님 패널이 놓여 있었는데, 성서를 공부하는 성모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성모님의 여러 이미지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슬픔이란 감정이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품위를 생각하게 하고 위로를 주는)과 성서를 공부하시는 성모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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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교회 앞에 놓인 패널로 공부하시는 성모의 모습. 읽고 사색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권리가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한 소녀들에게 꿈으로 피어나길.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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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를 바라보다가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가난한 소녀들, 여성들을 생각했다. 생을 통해 그들의 갈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하여 진리에 이르기를 기도했다. 이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인간이 이루어 놓은 과학 기술에 대한 경고를 담았는데,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 공식 E=mc2 이 적혀 있고, 히로시마 원폭 날짜인 1945년 8월 6일도 적혀 있다. 인류가 가져야 할 도덕적 책임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건너편 예수회 성당에는 여성 형상이 출입문 위에 놓여있다. 빨간 불 같은 머리와 몸을 한 나무 조형은 성령의 여성성을 표현했다. 나는 이 새로운 생명의 이미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성당 주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용기를 내어라, 일어나라!” 성령이 오시길 간절히 기다리는 오늘, 지친 세상에 오시는 생명의 숨이신 성령께서 일어나라 하시니, 교회는 함께 용기를 내었으면 한다. 하느님의 루아흐(숨결), 그 생명 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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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신학 오디세이아3’ 코너에 함께 연재합니다.
지난 4호에 보내드린 5월 묵상 잘 하고 계신가요? 아직 안 하셨다면, 꼭 시간 내어 해보시길. 다음 《오브》는 5월 27일에 발행됩니다. 《오브》 5호에 대한 답장을 보내주세요. 소중하게 읽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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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 : 출판사 옐로브릭
- 에디터 : 오수경·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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