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경(수경) : 안녕하세요, 수녀님! 비록 서면이지만 이렇게 뵐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으시는 분 중에 아직 수녀님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정은(정은) : 저는 미국 홀리네임즈 수도회(Sisters of the Holy Names of Jesus and Mary) 소속 박정은 소피아 수녀입니다.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고요. 현재는 글로벌 교육자이자 학습자로서 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며, 제가 가진 것들을 수업과 글쓰기를 통해 나누며 살고 있어요. 제 생의 소망은, 제가 영성 공부를 통해 조금씩 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갔듯, 모든 여성이 여성 영성을 함께 공부하면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삶의 기쁨을 만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미국의 여러 수도회와 신학적 비전을 심화하는 작업과 피정 지도를 하고, 한국과 베트남에서 시작한 '마음길 열다'라는 여성 영성지도자 양성 과정도 진행하고 있어요. 또한 아시아 여성의 체험을 서구의 담론과 공유하는 학문적 작업에도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세계 영성지도자 모임, 국제수도회 장상(長上) 모임, 리더십 협력 모임, 미국 가톨릭 신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베트남 예수회 신학교와 미국 University of the West 등에서 자크 라캉 세미나를 지도해 오고 있습니다.
수경 : N인분의 삶을 살고 계시는군요. 문득 수녀님의 하루 일과는 어떠실지 궁금해집니다.
정은 : 늘 그렇듯 저의 하루는 스케줄 점검으로 시작해요. 줌 수업, 영적 지도, 슈퍼비전 시간을 확인하고 준비를 시작하죠. 요즘은 대부분의 수업과 영성 지도가 줌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좋은 것 같아요. 줌의 세계에서는 본질만 남는달까요. 거품을 빼고 바로 핵심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죠. 예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분들과 마음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수업을 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여전히 놀랍고 즐거운 일입니다. 그 공간에서 재미있고 깊이 있는 무언가를 서로 나눌 수 있도록 준비하고 이끄는 일이 제가 온 마음을 다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수경 : 이렇게 바쁘신 와중에도 꾸준하게 좋아하며 하시는 일이 있나요?
정은 : 요즘 제일 좋아하는 일은 제가 살고 있는 동네 한인 성당에서 사람들과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이에요. 글로벌한 연결과 소통과는 다르게, 아무런 준비 없이도 서로의 눈빛을 들여다보고, 손을 잡아 주고, 한 주 사이의 안녕을 묻는 공동체의 삶이 저에게 기쁨을 줍니다.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신앙은 사투리로 배운다”고 하셨는데, 저는 어린 시절 한국 성당에서 ‘아기별 잔치’(주일학교의 성탄 학예회)를 준비하며 그 서울 사투리로 신앙을 배웠어요. 그리고 지금은 한국 억양이 짙게 밴 영어를 쓰는 한인 교회 공동체의 사투리로 다시 신앙을 배우고 있습니다. 멀리 강의를 다녀와 몸이 힘들면 그걸 바로 눈치채고 음식을 만들어 건네는 자매의 손길에서, 잘 써지는 볼펜을 슬며시 건네주는 형제의 손길에서 ‘정’으로 신앙을 배우는 일, 그것이 요즘 제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일입니다.
수경 : 그런 공동체에 속해 계시다니 제 마음도 따뜻해지네요. 이제 곧 봄이 오는데, 수녀님이 좋아하시는 계절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정은 : 저는 늦가을의 11월, 그것도 잿빛의 저녁을 좋아해요. 그 시간 산책을 하다가 어떤 집에서 벽난로 장작이 타는 냄새가 나면 제 마음 속에는 어떤 그리움 ㅡ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본향에 대한 그리움 ㅡ 이 일렁이고 그럴 때면 죽음에 대한 묵상을 해요. 제가 수도자의 길을 가기로 한 것도 사실, 이 영원에 대한 어떤 그리움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갑자기 봄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봄길을 직접 만날 수는 없겠지만, 새롭게 움트는 계절이라는 점에서 봄은 관상에 맞닿아 있는 시간입니다. 봄은 생각보다 사나운 찬 바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럼에도 꽃을 피우는 나무도 만나는 놀라움의 시간이지요. 어느 봄날, 어린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온 예쁜 한 자매가 “수녀님! 오늘 묵상했는데, 하느님이 ‘내가 오늘 너를 위해 봄날을 만들었다’ 그러셨어요” 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어요. 봄날처럼 화사하게 빛나는 얼굴로 내게 달려와서 그 자매가 들려준 그 봄이 너무 정겹고, 또 사랑스러웠어요. 그래서 제게 봄은 새로움, 그리고 생명의 시간이에요. 나뭇잎의 눈이 트는 데 우리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처럼 진정한 희망은 하느님을 신뢰하며 생명을 만들어 가는 그분의 움직임을 보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봄날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 어둠 속에서 달려오는 생명의 등불을 바라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수경 : 봄에 대한 수녀님의 말씀이 이 뉴스레터의 의미와 만나는 것 같아요. 뉴스레터를 준비하며 “우리 삶을 하루에 표현한다면 어느 때일까?”라는 질문을 해봤는데요. 수녀님은 지금 하루 중 어느 때를 살고 계시나요?
정은 : 저는 지금 오후 7시 반을 살고 있어요. 지루한 하루 일과를 끝내고 퇴근해서 친구들을 만나러 달려가는 신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늘 재미있었어요. 하루 중 생긴 일이나 상사 험담 같은 것들을 악의 없이 친구들과 나누다 보면, 사회가 만들어 가는 내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아주 사적인 내가 한껏 피어나던 시간이었어요. 내면의 고민, 진정한 흥밋거리, 하느님 이야기, 책 이야기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요. 늦은 밤이면 아버지가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시곤 했는데, 나중에 하늘나라로 돌아갈 때도 아버지가 기다려 주실 것 같아요. 내 생에 남은 봄날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오후 7시 반의 봄날은 따스하고 친절하고, 또 깊은 내면을 향한 것이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수경 : 저의 시간이 오후 7시 반 정도에 다다랐을 때 수녀님과 같은 소망을 품게 되길 바라게 되네요. 그렇다면 수녀님,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하루’에 빗댄다면 지금은 언제일까요?
정은 :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이른 새벽이 아닐까 생각해요. 많은 것들이 태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시간은 돌고 돕니다. 시대의 거대한 흐름이 소용돌이칠 때마다 무수한 희생이 있었어요. 중세 사회가 무너지고 근대 사회가 시작될 때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고,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지요. 이제 우리의 세상에는 AI라는 새로운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AI에서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인공 일반 지능)로, 더 나아가 ASI(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인공 초지능)로의 진화가 예상되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이 시간이 도리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관계 안에서 찾아야 하는 때가 아닐까 생각해요. 나 자신과의 관계, 신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생명과 물질과의 올바른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시간입니다. AI가 제공하는 거대한 정보 앞에서 내가 던지는 질문과 돌아오는 답변은 결국 나 자신의 이미지가 반영된 것이죠. 거대한 거울상(mirror image) 앞에서 우리는 존재에 대해, 삶에 대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고민하며, 현대 사회의 심각한 질병인 소외를 함께 극복하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경 : 수녀님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 전 수녀님이 쓰신 글이 생각납니다. 그 글 중 “너 나 할 것 없이 질주하는 이 시대에, 봄의 신호를 찾으면서”라는 대목이 마음에 남았어요. 그 문장이 좋으면서도 세상이 너무 소란스러워서, 질주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봄의 신호를 찾기가 점점 힘들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럴 때 수녀님은 어디서, 어떻게, 무엇에게서 ‘봄의 신호’를 찾으시나요?
정은 : 봄의 신호는 사실 여기저기 많아요.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산책하면서 매일매일 변해가는 나뭇가지를 살펴보고, 담장에 피어난 꽃이 있는지, 새롭게 들려오는 새소리가 있는지 하나하나 찾아보는 거지요. 거리를 지나치는 누군가에게 가벼운 목례를 건네거나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나눌 때,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에게 안부를 건넬 때도 봄의 신호를 찾을 수 있어요. 아이들의 맑고 환한 웃음소리에서, 출근길을 달려가는 직장인의 모습에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들의 모습에서도 봄의 신호는 넘칩니다.
봄, 그러니까 새 생명의 시간을 본다는 일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처럼 세상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고,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는 것처럼 따스하고 안타깝게 바라보는 일일 거예요. 저는 익숙한 풍경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 숨을 고르고 멈춰 서서 사진을 찍어요. 다람쥐나 고양이, 까마귀의 새로운 동작이나 순간을 만나면 가만히 서서 숨을 멈춥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지요.
매서운 바람 가운데서도 바른 일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평범한 시민의 뒷모습에서, 기대하지 않은 책 속에서 만난 설레는 구절에서, 누군가의 진실한 내면의 이야기를 듣는 경청의 순간에도 봄의 신호를 만나기도 해요. 봄의 신호를 찾아내는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보다 기쁨일 거예요. 화려한 영광이라기보다는, 삶이 조촐하게 흐르고 있다는, 그리고 그 흐름을 감지하며 내 생의 강가에 서 있다는, 소박하고 단단한 기쁨일 거예요.
수경 : 봄의 신호가 이렇게나 많은데 한편으로는 그 신호로부터 소외되거나, 전쟁을 비롯하여 여러 갈등으로 인해 긴장된 상태로 살거나, 상처 입은 채 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수녀님의 글에 나오는 “뿌리가 뽑힌 채” 사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뿌리’와 같은 마음가짐은 무엇일까요?
정은 : 요즘은 정말 뿌리에 대해 묵상하게 되는데요. 어느날 저녁 길을 걷다가 나무의 그림자가 마치 하늘에 뿌리를 둔 것처럼 보였어요. 그걸 보며 신앙인이란 결국 하늘에 뿌리를 두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의 ‘뿌리가 나무에게’라는 시를 참 좋아하는데요, 나무에게 생명을 유여하기 위해 자신을 다 내어주는 뿌리의 아픈 사랑에 관한 시에요. 그런데 그 아픈 사랑은 결국 하늘만이 가능할 것이고, 신앙하는 인간은 자신을 유여하게 하는 뿌리같은 그 사랑이 거하는 곳은 하늘임을 기억해야겠죠. 내가 성공하거나 유명해지지 않더라도, 부자가 아니어도, 단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나의 고유한 품위를 잃지 않고 살겠다는 결심은 결국 나의 근원, 그 뿌리가 하늘에 있음을 깊이 깨닫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뿌리는 옆으로도 뻗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어요. 언젠가 자매들에게 피정 지도를 하는데, 뿌리가 뽑힌 듯한 느낌에 시달리던 한 자매가 묵상 후 기쁜 얼굴로 ‘옆으로 뿌리를 뻗어가는 나무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뿌리가 뽑힌 듯 보여도 우리는 사실, 하늘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며, 그러하기에 뿌리를 옆으로도 뻗어가야 할 것 같아요. 같은 시대를 함께 아파하며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어깨를 겯고, 함께 살아가면서 옆으로 옆으로 연대하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형태가 되었든, 내 삶의 힘듦과 감동을 함께 나눌 공동체를 모두가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수경 : 최근 수녀님에게 영감을 주거나 수녀님을 즐겁게 한 것은 무엇인가요?
정은 : 최근 감동스럽게 읽은 책은 시몬느 베유의 《뿌리내림》이었고요. 정양모 신부님이 주해를 한 《다석일지》 세 권을 구입하고 무척 행복했어요. 신학자들의 사고가 좀 더 한국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년의 사제가 주해를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많이 감동받았어요. 매일 매일 하루에 5페이지씩 영적 독서를 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남자 친구와 헤어져 마음 아파하는 젊은이를 보면서, 특히 치열하게 사랑하고, 정직하게 아파하는 그의 상심에서 젊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관상했어요. 누구와 이별하고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것도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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