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 우리의 죄가 우리를 휩쓸어갔습니다 /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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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둡고 아픈 세상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뉘우치는 일뿐이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 하고, 하나라도 더 소비하고자 하는, 그래서 이제 멈추기조차 어려워진 속도를 내려놓는 일이다. 이 글로벌한 세상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일으킨 전쟁은 곧 지구의 가난한 곳에 사는 이들이 받을 고통을 의미한다.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3월 9일자 기사),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세계의 3분의 2 정도의 질소 비료가 수출되는데 다가올 경작 시기에 질소 비료가 없으면, 수확량이 줄어 서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지역에 식량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당장 주가가 떨어진다고 걱정하지만, 전쟁은 누군가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다. 이번에 테헤란 미나브시에 있는 여자 초등학교가 폭격당해 172명의 어린이들이 죽었다. 이 소식을 들으니 살아있다는 것이 미안해진다. 죽음은, 특히 무죄한 어린이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살아있다는 것’에 관해 다시 생각할 것을 경고하는 듯하다. 친구가 보내준 뉴스 클립에는 어린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하나하나 호명되었다. 너무나 곱고 어린 얼굴들과 이름들이. 세월호 아이들이 희생되었을 때, 그 아이들의 꿈이 물에 잠겼을 때,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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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에 꽃을 뿌리는 한 추모자. 전쟁의 잔혹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란 소녀들의 죽음. 세계 여성의 날에 우리는 아름다운 소녀의 죽음을 목도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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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를 드리면서도 자꾸 눈물이 난다. 이 무자비한 전쟁은 도대체 왜 일어나야 하는가! 결국 우리 시대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물인 것 같다. 이사야서의 구절이 계속 맘에 맴돈다. “우리는 모두 부정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기껏 잘했다는 것도 개짐처럼 더럽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었고 우리의 죄가 바람이 되어 우리를 휩쓸어갔습니다.” (이사야 64:5) 여기서 ‘개짐’은 여성의 생리대를 의미한다. 사용한 생리대는 얼른 잘 싸서 버리거나 빨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생명은 시든 나뭇잎 같고, ‘개짐’과 같은 탐욕과 질주는 우리의 인간성을, 우리의 인격을,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과 어린이들을 휩쓸고 갈 것이다.
지난 주일, 무력함과 슬픔 속에 하느님을 희망하면서, 나는 5분의 침묵을 제안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모든 속도를 내려놓고, 침묵하며, 또 다른 누군가를 초대하는 이 침묵의 기도가 세상에 위안과 평화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친구들로부터 동참한다는 연락이 오고, 우리 수녀님들이 계신 요양원에서도 함께한다는 메시지가 오고, 그래도 함께 기도한다니 마음이 좋았다는 연락도 듣고 하면서, 기쁨이 생겼다. 나 혼자 하는 기도가 아니라 연대 속에 기도로 희망의 그물을 짜는 일이라 생각하니, 사순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나를 찾은 것 같다.
우리 동네에 있는 리전 오브 아너(Region of Honor) 미술관을 좋아한다. 그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들 중 <깨어진 항아리>가 있다. 그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다. 소녀가 폭력을 당한 듯한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발치에는 깨어진 항아리가 있고, 저 멀리에는 화려한 도시가 보인다. 가난한 사람의 얼굴이기도 하고, 무력한 소녀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어쩌면 이 소녀의 모습은 인간성을 잃어버린 시대를, 거대한 기술혁명과 AI 시대에서 소외로 아파하는, 혹은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의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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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소녀가 깨어진 항아리 옆에서 당황하고, 슬퍼하는 모습이다. 팔루스를 상징하는 펌프, 그리고 깨어진 물동이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인류의 모습같기도 하고,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활기를 찾아 물동이를 버리고 떠나 갔던 사마리아 여인의 삶과 정 반대의 자리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사진 출처 :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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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우리는 또 한 번의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았다. 축소되고 왜곡된, 그리고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여성의 이야기와 경험들을 말하며 담론이 되어 가도록 노력한 많은 여성들을 기억한다. 예수를 따르던 많은 여성 제자들의 삶을, 나자렛의 성모와 마리아 막달레나와 이름 없는 많은 여성들을, 특히 우물가에서 이방인을 만나 열린 마음으로 거침 없이 대화하고, 진리를 발견한 뒤, 사람들을 향해 달려 나간 사마리아 여성을 기억한다. 그리고 유대인 수용소의 마당에서도 피어난 꽃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았던 여성, 에티 힐레숨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 세상 많은 어머니들의 눈물을 기억한다. 이 여성들의 한숨과 용기는 가난 속에서 인간애를 부둥켜안았다. 여성과 남성이 무조건 대척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몰아붙이는 그런 여성주의는 이미 여성주의가 아니다. 아픈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힘은 역사 속에서 늘 아픔의 자리에 있었던 경험에서 왔다. 미국의 강의실에서 여학생들은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란 말을 덧붙이며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하곤 한다. 결국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페미니스트가 아니란 말인 것 같다. 누가 나에게 “수녀님은 페미니스트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네. 저는 페미니스트지만, 가난하고 힘없고, 그래서 마음 아픈 이들과 연대하는 페미니스트예요. 이 페미니즘에는 남녀 구분 없이 서류 미비 이민자들과, 영어 못 하는 사람들과, 힘 없는 사람들이 다 함께 담깁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세계 여성의 날, 우리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아파할 것이다. 아니 아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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