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 : 당신에게 이 그림을 선물해도 될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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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님 :) 여름은 인간에게 찜이 될 것인가, 구워질 것인가… 두 가지의 길을 선택하도록 내모는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짱짱한 하늘 아래서 구이가 되는 것 같고, 어떤 날은 수분 가득 품고 푹푹 쪄지는 것 같아요. 오늘은 일단 구워졌다가 쪄지고 있는 중입니다. 😳 여름나기는 좀 힘들지만, 7월은 제 생일이 있는 달이어서 좋기도 해요. 생일이면 뜻밖의 축하와 선물을 받는데요. 그 선물들이 어쩜 그리도 알맞은지 늘 감탄하곤 해요. 단지 선물을 받아서 좋은 게 아니라 그 선물을 생각하는 동안 저를 떠올려봤을 마음이 이미 제게 충분한 선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선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이맘때 하곤 해요. 오늘도 선물 같은 박정은 수녀의 글을 보내드립니다. 부디 독자님께 알맞은 글이길 바라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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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활동 수도회들은 총원(總院,수도회 전체를 대표하고 통할하는 중앙 관구)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게 세계적인 추세이다. 수녀님들 숫자가 줄어드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고, 글로벌한 이 세상에서 서로 연계하고, 소통하면서, 미션을 거시적 차원에서 이해하게 된 까닭이다. 이 지구상의 많은 수도회들은 관구나 지역(region)을 하나로 묶어서 새롭게 자기들의 고유한 영성을 재정비하는 중이다. 도미니꼬회나 살레시오회 같은 수도회들은 그들의 창설자의 영성을 함께 나누는 여러 수도회들과 연계해서 양성이나 미션을 함께 하기도 한다.
싫든 좋든, 이런 변화가 이미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 수도회도 ‘하나됨’을 추구하며 총회를 시작했다. 몬트리올 공항에 내려 차로 강을 건너면 (사실 몬트리올은 섬이다), 작은 마을 롱괴유(Longueuil)에 우리 수도회가 있다. 프랑스 이민자들로 시작된 퀘벡 지역의 동네를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18세기에 지어진 아기자기한 교회들과 조그만 집들이 참 정겹다. 특히 칠월의 퀘벡은 온통 초록이다. 길 하나 건너면 있던 성당들은 어느새 비어 대부분 시에서 사들여 마을 전시장 같은 공동의 공간으로 사용한다.
총회를 하는 동안 이런저런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었지만, 무엇보다 내게 좋았던 건 우리 수도회 창설자 마리로즈 뒤로셰가 태어난 집터, 세례받은 성당, 그리고 그분의 유해가 있는 롱괴유 대성당의 정겨운 경당을 들러본 일이었다. 더욱이 좋았던 건, 미래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또래 수녀들과 우리 영성을 사랑하는 평신도들이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며, 수도생활의 기쁨이 서로 신뢰하는 자매들을 가진 것. 그리고 그 자매들과 비전을 나누는 데 있음을 새삼 느낀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 페루에서 온 자매들의 마음이 나에겐 커다란 위로로 다가온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가운데 있는 아주 조그만 나라에서 온 우리 수녀님들이, 아프리카인의 품위를 가지고 춤을 출 때, 그들의 힘 있는 춤사위에서, 이토록 멋진 수녀님들과 삶을 나누는 나의 행운을 생각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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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사제관이었던 건물은 시골 동네 갤러리로 사용 중인데, 이 전시실의 이름은 우리 수도회 창설자의 이름을 딴 유랄리 뒤로셰 갤러리. 18세기의 오랜 건물이지만, 들어가 보니, 신부님이 사셨던 사제관 느낌이 여전하다.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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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날의 전시는 "캐나다 시골의 생활"이고, 이 그림은 '피노의 오두막에서'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이 장면이 동화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동화의 나라라는 것이 결국 자그마하고, 아늑하고, 따스한 나라일 테니까.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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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하루 순례를 다녀왔다. 우리는 이 하루 여행을 ‘마음의 순례’라고 이름 붙였다. 차창 밖에 보이는 황금 들판에서는 보리와 밀이 익어가고,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나무숲을 보면서 마음이 넉넉해졌다.
그림 같은 마을 벨로에일(Beloeil)에 도착했는데, 강 건너편에는 푸른 동산 같은 산이 있고, 강 이편에는 성당이 고요하게 서 있는 이 마을이 왠지 언젠가 왔던 곳처럼 낯설지 않다. 성당 앞 나무 그늘에는 여기저기 벤치가 있고, 사람들은 홀로 책을 읽기도 하고, 소풍을 즐기기도 하는데,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서 화가 두 명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좋아하기에 구경하러 갔는데, 내 마음을 사로잡는 그림을 만났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푸른 동산, 하얀 성당, 그리고 강물이 화폭에 담겨 있었다. 너무 마음에 들어 눈을 떼지 못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당신의 그림이 담은 이 산과, 성당, 그리고 이 강물이 내겐 거룩한 곳이란 이야기를 하고 돌아서 가는데, 그 화가가 달려와 물어볼 게 있다고 했다. “무얼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당신에게 이 그림을 선물해도 될까요?” 세상에서 들은 가장 겸손하고 친절한 말이었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는데, 그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퀘벡이 주는 선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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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퀘벡의 선물‘이라며 자신의 그림을 건네준 캐나다의 화가 폴 후레르. 낯선 동네에서 느끼는 거리감을 바로 없애주는 마법의 비밀번호는 너그러운 친절이 아닐까?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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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도회 창설자 세 분은 사실 이 산에서 성체거동을 하면서 서로 만났고, 이 성당은 그분이 수도자가 되기 전 열심히 신자들을 돌보던 본당이었다. 이 강물을 따라 우리 수녀님들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았다.
내겐 낯설고 멀기만 했던 퀘벡이 갑자기 마음에 가까이 다가온다. 그래서 도시의 깔끔한 수도회인 우리 수녀원의 처음 시작이 이렇게 소박하고 다정한 퀘벡의 시골이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자랑하고 싶어진다. 이곳의 납작하고 조그만 집에 살던 시골의 어린 소녀가,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하늘나라를 꿈꾸었다는 사실이 오늘 내 마음 속에 별처럼 깊이 다가온다. 그렇게 또 퀘벡 시골의 아기자기한 풍경들과, 자신의 작품을 겸손하게 건네던 예술가의 함박웃음에서, 뜻밖에 하느님의 위로를 만난다. 그러니 인생은 그저 고요하게, 소소하게,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가는 거다. 그리고 나는 대충, 그리고 느리게 사랑하기로 한다. 어떤 시인의 말처럼, 천사는 대충을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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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신학 오디세이아3’ 코너에 함께 연재합니다.
🌗 지난 8호에 보내드린 7월 묵상 잘 하고 계신가요? 시간 내서 꼭 해보세요! 다음 《오브》는 7월 29일에 발행됩니다.
지난 8호에 보내주신 소중한 답장을 소개합니다.
독자님의 답장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뜻밖의 선물처럼 여기며 소중하게 읽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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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 : 출판사 옐로브릭
- 에디터 : 오수경·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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