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 : 너무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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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님 :)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어떤 표정으로 무슨 인사를 건네나요? 며칠 전 일이 있어 먼 동네 간 김에 근방에 사는 지인에게 연락을 했어요. 갑작스러운 전화에 지인은 반가운 목소리로 반겨주었죠. 그런 지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OOO 님 목소리가 오늘 날씨 같아요.” 마침 하늘이 순수하게 파랗고, 구름이 갓 빨래를 마친 것처럼 뽀얗고, 바람이 정답게 살랑이는 날이었거든요. 그 말은 그때의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깨끗한 애정이었어요. 이 메일을 보낼 때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맑은 인사를 건네고 싶어요. 오늘도 그런 마음을 담아 박정은 수녀의 글과 안부를 담아 11호를 보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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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8월을 보내고 있다. 펄펄 끓는 날씨 속에서, 지구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우려하면서도, 더 생태적으로 살지 못하는 내 모습이 슬프다.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시대의 표징을 느끼지만, 그 초대만큼 내 마음이 커지지 못할 때, 내 영혼은 슬프고 작아진다. 사도 바오로의 슬픔이 느껴진다. 진실을 향해 온전히 열려가지 못하며 주저하는 나의 영혼과 내가 만나는 타인에 대해 느끼는 슬픔들. 하지만 그 안타까운 느낌의 알갱이들은 여전히 소중하다. 언젠가는 그 슬픔이 우리의 가슴을 펴고, 내가 가진 사고의 틀을 내려놓으며, 커다란 마음을 향해 걸어가게 할 테니까. 자신의 어둠을 껴안을 줄 아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자비를 만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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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나무는 고요한 숲속에서 나뭇잎을 물들이며 잔잔하게 흐르는 계절을 이야기해 준다.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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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이미지를 자신의 초상처럼 내세우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이미지에 속는 우리들의 현재를 보며 그 어떤 이미지에도 속하지 않은 채 조금은 우직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무더운 더위 속에서도 숲 안쪽에는 빨갛게 물든 나뭇잎이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진정성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 깊이 응원하게 된다. 늘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신학을 연구하는 후배, 영적인 삶을 끝없이 갈망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자매들을 볼 때, 내 영혼의 허기가 채워진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 내가 만난 이 자매들에게 깊은 애정을 품게 된다.
나에게 이번 팔월은 피정 지도를 하면서 보낸 매우 특별한 여름이다. 숲에 둘러싸여 바닷가에서 하늘나라를 그리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피정들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친환경적으로 피정집을 운영하는 수녀님들의 노력에 가장 감동했다. 정갈하고 건강한 음식을 내어놓는 수녀님들의 모습에서 “바베트의 만찬”을 떠올렸다. 수녀님들이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매일매일 살아 내시는 모습에 감동이 일었다. 인제의 다물피정의 집을 산책하다가, 올해는 텃밭도 안식년이라는 팻말을 보고 마음이 겸허해졌다. 우리 모두에게 쉼이 필요하듯, 우리가 먹을 채소를 내는 땅도 쉼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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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다물피정의 집 텃밭 앞에 놓인 팻말. 땅도 풀도, 그리고 사람도 쉼이 필요하다. 쉼에서 창조가 나오고, 바른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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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빈 땅을 보며, 나에게도 얼마나 쉼이 필요했나 하는 생각을 비로소 한다. 이 피로사회에 피정은 무엇보다 영혼이 즐겁고 또 쉬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여름 내 피정은 자유롭고 가벼운 기도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자연 안에서 회복하는 피정이었다. 무더운 어느 날, 피정 수녀님들과의 면담을 마친 오후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숲길을 홀로 걸어가는데, 노루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껑충껑충 계단을 뛰어올랐다. 숲 바깥은 숨 막히는 고온이지만, 숲속에선 여전히 생명들이 숨을 쉬고 있다. 너무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숨에 내 숨을 조심스레 합쳐보는 일이 가장 순정한 기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성 바닷가에서는 자매들과 침묵 피정을 하면서, 바다의 모습과 파도를 만나보라고 권했다. 나도 파도치는 바다의 가장자리를 걸으며 매 순간 바뀌는 바다의 얼굴을 공부했다. 어떤 파도는 크게 또 어떤 파도는 작게, 그러나 최선을 다하며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는데, 파도가 일어나는 순간, 파도는 바다의 속살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내 발밑까지 카페라테의 크림 같은 하얀 거품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바다의 속을 들여다보고, 또 파도의 리듬을 만나려면, 고요하게, 몸을 숙여 바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게 바닷속을 들여다보면서 침묵을 배운다.
동시에 이 팔월의 나무와 바다의 물결 속에서 나는 가을을 만난다. 아무리 날씨가 무더워도 가을은 또 그렇게 여름이 남기는 껍데기 속에 가만히 들어와 있다. 입추가 될 무렵, 아침 눈을 뜨자마자 매미 소리를 들었다. 한여름 기승을 부리는 그런 울음소리가 아니라 온몸의 마지막 힘을 다해 토해 내는 그 소리를. 그 소리와 소리 사이의 간격이 점점 멀어지더니, 결국 매미 소리는 멈추었다. 그렇게 사라져 가는 마지막 매미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결연해졌다. 어떤 존재의 마지막은, 그것이 무엇이든 장엄하다. 그렇게 매미 소리의 결여 혹은 상실 위에 가을이 오는구나 생각하니,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는 팔월의 날들이 신비하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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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한낮, 눈부시게 빛나는 꽃을 보며, 고단한 매일을 정성스레 살아가는 작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생각한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하늘나라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싶다.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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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햇살이 얼마나 더 부드러워질까? 더위는 아직도 ‘여름이다’라고 외치지만, 미리 가을을 느끼는 나는 조바심이 난다. ‘내가 사랑해야 할 몫을 다 했나?’라는 질문과 함께, 내가 베풀 너그러운 마음을 다 베풀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새로운 시간을 맞을 채비를 서두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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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신학 오디세이아3’ 코너에 함께 연재합니다.
🌗 지난 8호에 보내드린 8월 묵상 잘 하고 계신가요? 시간 내서 꼭 해보세요! 다음 《오브》는 8월 26일에 발행됩니다.
지난 10호에는 무려 3통의 답장을 받아서 신이 났습니닷! 보내주신 소중한 답장을 소개합니다.
독자님의 답장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뜻밖의 선물처럼 여기며 소중하게 읽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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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 : 출판사 옐로브릭
- 에디터 : 오수경·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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