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미국 앨러미다는 며칠째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종일 바람이 불고, 창밖으로 하루하루 더해 가는 초록의 춤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책을 읽다가도, 커피를 마시다가도, 초록을 만져 보고 싶어 떨어지지 않는 감기를 무시하고 우산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멈추지 않는 초록 바람 속을 걷다가 나뭇잎도, 아이들도, 내 차 지붕에 떡 하니 올라가 있는 까마귀도,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초록초록한 계절의 비는 나에게도 생명 속으로 걸어 나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주일 미사 후, 나는 가까운 신자들과 비가 오락가락하는 공원을 걸었다. 초록이 나를,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행복감을 온통 휘감았다. 출렁이는 초록색 호수를 보면서 싱그러운 자연처럼 우리들의 세상이 평화롭기를, 그리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출렁이기를 기도했다.
성 주간의 장엄 전례를 마치고, 우리는 활기찬 알렐루야를 노래하고 있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부활 시기를 보내며 부활을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여전히 아픈 세상 한가운데서, 우리가 부활 시기를 살아간다는 것은 무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첫 제자들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앙인은 부활의 빛 속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새 길을 찾아간다. 그 의미는 뭘까? 누구든 자기 생의 불확실성을 기쁨 속에 견뎌 내는 서툰 작업을 시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복음서에서 부활 사화는 다른 부분에 비해 짧고, 또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성서학자들은 바로 이 시점, 즉 신앙 공동체가 부활의 빛 속에 낯선 삶을 시작한 이 시점이 복음서를 작성한 시기라고 이야기한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부활이란, 삶 속에서 새로운 존재로서 살아가야 함을 의미했다. 그것은 신비와도, 명료함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삶의 현장에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 깊이 성찰했을 것이다. 성서해석학자이자 영성신학자인 산드라 슈나이더스는 이러한 점을 강조하며, 복음서는 부활의 체험에 기초한 상상력을 가지고 써 내려간 글이라고 해석했다. 나는 부활의 삶을 늘 신학적 동력으로 삼았던 그의 씩씩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기억한다.
그러니 복음이 쓰인 배경에는 부활을 경험한, 그래서 새 생명을 향해 걸어간 초대 교회 공동체의 성찰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새로운 시선으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던, 아름다운 시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부활 신앙을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불확실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크고 작은 일상 경험을 통해 시선을 확장해 가는 호기심 깃든, 그래서 약간은 고달픈 작업일 것이다. 그러니 부활은 어떤 고정관념이나 습관이 된 교리를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생과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길어 내려는 부단한 노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