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호 - 밥 먹었니? 우리 밥 한번 먹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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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님 :) 아직은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해 더 더워지기 전에 걷자는 마음으로 지인과 한강 산책길을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어요. 너무 반가워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지인은 항상 츄르를 가지고 다니는 고양이 집사님이었는데 오늘은 안 가지고 나왔다며 안타까워했어요. “냥이야, 미안해. 츄르도 안 가지고 다니는 닝겐이어서.”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고양이는 우리가 그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 어디로 도망가지 않고 앉아있더라고요. 독자님은 요즘 어떤 풍경을 보고 계신가요? 우연히 만난 고양이의 간식도 챙기는 마음을 생각하며, 이 글을 보냅니다. 이 글을 읽을 독자님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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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여름 냄새를 맡게 될 때가 있다. 푸르름이 공기 속에서 훅 느껴질 때 새로운 절기가 시작됨을 안다. 유월이 되면, 아이들의 첫영성체(유아 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이 처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가 떠오른다. 내 대녀 도리가 홍콩에서 첫 영성체를 하러 간다고 연락했다. 준비는 되었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 내 질문이 어리석다는 걸 나도 잘 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시면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고 말씀드리라고 당부했다. 도리는 “알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첫영성체를 하는, 그렇게 소녀가 되어가는 도리를 위해 기도하다 첫영성체 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우리 동네 오클랜드 한인 성당에서 가장 기쁘게 봉사하는 일이 성체 분배인데, 나이가 제법 든 한 자매가 떠오른다. 환한 얼굴로 성체를 받아 모시고 무릎을 약간 굽히고 가는, 어린 시절 성체를 모실 때 하는 자세를 배운 대로 아직도 하시는 그를 보면, 내 마음까지 즐거워진다. 그리고 가까운 신자끼리 함께 차를 마시며, 산책하며 그동안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성체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살다 보면 어려운 시간이나 어둠의 시간도 지나가고, 또 기쁨의 시간도 맞게 되는데, 그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일이, 이 무한 경쟁의 시대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이고, 어쩌면 성찬의 삶이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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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핀 꽃을 만나러 가서 본 갓 태어난 솔방울. 그 연약함과 부드러움을 만져보다, 첫 영성체하는 내 대녀의 영혼을 생각했다. 늘 그렇게 어린 소녀의 가녀린 마음으로 성체의 신비를 만나길.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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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좋아하는 성체성혈 대축일을 보내면서, 부속가를 천천히 읽어본다. [부속가 듣기] 하늘의 시민이 되는 천사의 빵은 길손의 음식이라는 이 절절한 기도 속에서, 다시 한번, 신앙인의 삶은 길손이라는 본질에 있음을 기억한다. 밥이 되어 오시는 하느님이라니. 한 번의 창조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끝없는 내어 줌, 그 비움의 신비에 현기증이 난다. 며칠 전 여성 영성 수업 중, 한 자매가 “영적 지도의 개념과 정의를 설명하기가 어렵더라”는 고백을 했는데, 나는 왜 자꾸 개념을 설명하려는지 물었었다. 때론 혹은 자주, 이론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나의 체험을 돌아보고 나누어 보는 것이 훨씬 더 나을 때가 있다. 내게는 성체성사가 그런 것 같다.
내가 먼 여행을 다녀와 지쳤을 때 밥과 국을 가져다주는 지인의 손길을 만날 때,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매일의 신앙생활을 이야기할 때, 성체성사의 의미가 따스한 일상으로 다가온다. 나이 들어 BTS를 좋아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에 대한 질문부터, 성서를 다 쓰면 왠지 죽을 것 같아서 나중에는 천천히 쓰게 된다는 귀여운 고백까지, 가볍게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그렇게 우리는 밥이 되어 오시는 하느님을, 길손의 음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분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AI 시대를 생각하며 시대의 고독과 우울 속에 한 끼 되어 오시는 그분의 마음을 더 떠올리게 된다. 교황 레오 14세의 회칙 〈고귀한 인류〉의 원제목은 Magnifica Humanitas, 즉 위대한 인간성이다. 이 회칙이 우리 시대의 소중한 가르침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알고리즘의 고리에 갇혀버린 영혼의 고독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과 인간이 서로 만나고, 그렇게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찻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나를 포함해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소소한 삶의 대화를 나누는 일이 줄어든 것 같다. 심각한 주제로 토론하고, 효율적인 지식을 생산하는 일은 열심히 하지만, 같이 생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들여다보며, ‘내가 너에게 관심한다’는 비효율의 아름다운 손짓과 몸짓이 조금씩 서먹한 일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이미지 시대에 만들어진 허구의 세상에서 우리는 여전한 소외와 우울, 그리고 고독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그것은 마치 거울에 비친 상을 진실이라고 우기면서, 거울의 뒷면에서 울고 있는 영혼을 절대 바라보지 않는 어리석음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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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른 산길의 이름은 'desolation wildness' 즉, 영적으로 메마른 광야다. 그곳에서 고요하게 죽어가는 나무들과 새로운 생명과, 그 안에 깃든 바람소리를 들었다. 숨을 헐떡이며 언덕을 오르다 어쩌면 영적 메마름은 사람사이의 단절과 고독, 그리고 효율이라는 가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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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시대다. 가난의 시대다. 그리고 소외의 시대다. 용기를 내어, 인간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해야 한다. 밥이 되어 오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시간을 만들어 사랑하는 벗들과 산책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 아니, 최소한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밥 먹었니? 우리 밥 한번 먹자”라고 해야 한다. 그건 연꽃을 만나러 가는 마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마음이어야 한다.
엊그제 내가 아끼는 벗들과 산에 꽃을 만나러 갔다. 산꼭대기 피어 있을 꽃을 만나러. 그런데 산에서 만난 것은 새로 막 모양을 내며 자라고 있는 솔방울, 바람 소리, 골짜기 아래 숨은 푸른 호수의 물결 소리,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 먹은 점심이었다. 그렇게 꽃은 만나지 못하고 내려가면서, 나는 꽃을 만났음을 알았다. 우리 안에 있는 선의와, 자연의 아무렇지 않은 아름다움 안에서 꽃을 만났다. 식빵을 챙겨와서 우리를 먹이고, 느리게 걷는 우리를 위해 천천히 가는 젊은 친구의 배려하는 마음에서 꽃을 보았다. 꽃을 만나고 오는 길에 왜 우리는 더 무해한 수다를 떨어야 하고, 왜 우리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지를 생각한다. 연꽃의 향이 아직 내 맘에 남아 일렁인다. 그리고 빵이 되어 오시는, 밥이 되어 오시는 님을 생각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아직 갈 길이 먼 내 영혼의 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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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핀 꽃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함께 나눈 빵. 그리고 그 빵을 준비한 사람의 마음. 그 성찬례 안에서 하늘을 만난다. ⓒ박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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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신학 오디세이아3’ 코너에 함께 연재합니다.
🌗 지난 6호에 보내드린 6월 묵상 잘 하고 계신가요? 시간 내서 꼭 해보세요! 다음 《오브》는 6월 24일에 발행됩니다.
지난 6호에 보내주신 소중한 답장을 소개합니다.
- 해외에서 살고 있는 독자입니다. 요즘 분노하게 되는 일이 많고, 주변에 아픈 사람들도 많아서 정서적으로 힘든데 메일을 읽으니 토닥임 받는 느낌이 들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메일을 읽고 6월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친구들과 독서실 간다고 뻥치고, 친구들하고 공원 놀러 가서 놀던 생각이 나네요. ^^ ⇒ 독자님의 답장이 저희에게도 토닥임이 되네요. 학창 시절 이야기 재밌네요. 6월이 어디 쏘다니기 좋은 시절이죠.
독자님의 답장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소중하게 읽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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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 : 출판사 옐로브릭
- 에디터 : 오수경·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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